로마의 일인자들(5)
로마의 일인자들(5)
  • 김도원(金途遠)
  • 승인 2019.05.2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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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폼페이우스의 초라한 최후

기원전 491월의 열 번째 날 루비콘 강가에서 카이사르가 한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폼페이우스가 치른 전쟁은 모두 특별직권에서 비롯되었으니, 그는 먼저 전쟁을 개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단지 빗자루질을 기막히게 잘할 뿐이다. 반면 보니파는 전쟁을 시작하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재능도 없다. 싸움이 시작됐을 때, 폼페이우스는 그의 발목을 잡고 비난과 잔소리를 퍼부으며 그를 통제하려는 보니파 의원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51~52p)

기원전 488월 초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에페니우스강 북쪽, 파르살로스(그리스 아테네 북쪽에 있는 도시) 마을 외곽에 튼튼한 진지를 세웠다. 카이사르는 원래 최고의 땅을 자기 몫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약간의 불리함을 감수하는 데에는 언제나 보상이 뒤따랐다. 평범한 장군들-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평범한 장군으로 분류했다.-은 교본을 원칙으로 삼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 폼페이우스는 파르살로스를 좋아할 터였다.”(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312~313p)

폼페이우스 막사의 분위기는 헤라클라이아를 떠난 후 더욱 악화되었다. 아티쿠스 루푸스가 군사법정 심리를 열어 마르쿠스 파보니우스를 기소하라고 폼페이우스를 볼 때마다 괴롭혔고, 아헤노바르부스와 렌툴루스 크루스는 카이사르가 예측했듯이 폼페이우스의 전술이든 전략이든 사사건건 시비했다. 비난과 잔소리를 퍼부으며 폼페이우스를 통제하려 들었다. 폼페이우스가 보기에 이들은 전쟁을 모르는 자들이다. 그런데도 불구 자신을 전쟁을 회피하는 왕중의 왕 아가멤논이라며 조롱하고 있다. 폼페이우스의 전략은 식량과 계절을 무기로 교전交戰을 하지 않고 카이사르를 지치게 하는 데 있었다. 겨울이 오면 틀림없이 그날이 올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그런데 전쟁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말만 살아있는 원로원의 저 철부지들이 자신을 못살게 굴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전투를 하면 당연히 카이사르를 이길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에게 전투를 재촉하고 있다. 벌써 카이사르 이후의 최고신관 자리를 놓고 자신들끼리 싸우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저들은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인가? 그래, 머릿수라면 우리가 많기는 하다. 그러나 상대가 누군가. 8년간 갈리아에서 거칠고 무모하며 때로는 영리한 베르킹게토릭스와 전쟁을 하고 갈리아를 정복하고 온 자다. 전쟁에는 이골이 난 자다. 행운마저도 그를 비껴가지 않는데 전투에서 누가 카이사르를 이길 수 있을까. 라비에누스는 그것을 알텐데도 전투를 원하고 있다. 그는 단지 카이사르와 한판 맞붙고 싶은 것이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스터스 오브 로마 5부. 카이사르 3권에 수록된 폼페이우스 초상화. 콜린 매컬로가 덴마크 코펜하겐에 전시되어 있는 폼페이우스의 유명한 흉상을 보고 직접 그렸다.

 

“8월의 다섯 번째 날 폼페이우스와 그의 군대는 파르살로스에 도착해서 카이사르가 강의 북쪽 편에서 동쪽을 바라보며 진을 친 것을 발견했다. “아주 좋아!” 폼페이우스는 파우스투스 술라에게 말했다. 파우스투스 술라는 폼페이우스가 대화상대로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보좌관이었다. 결코 비난하는 법이 없었고 장인이 시키는 대로 잘 따랐기 때문이었다.“(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318~319p)

팔월의 아홉째 날 안개가 짙게 끼고 바람이 없어 답답했다. “폼페이우스는 절대 싸우려 들지 않을 거야!” 카이사르는 해가 뜨기 한 시간쯤 전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깨우러 가서 외쳤다. 카이사르의 군대는 이동 채비를 했다. 다음 이동지는 스코투사였다. 그러던 중 아이두족 정찰병이 전속력으로 말을 달려 카이사르에게 왔다. “장군님, 장군님!” 정찰병은 숨을 몰아쉬며 말에서 내렸다. “장군님, 나이우스 폼페이우스가 진지 밖에 나와서 군대를 정렬해 전투대열로 세우고 있습니다. 정말로 전투를 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제기랄그 외침이 카이사르의 입에서 나온 불평의 전부였다.(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325p) 군대는 언제 이동준비를 했냐는듯 제빠르게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전투를 지시하는 고함소리가 세차게 울려 나왔다.

폼페이우스군은 휘청거렸고, 무너졌고, 달아났다. 카이사르의 보병에게 라비에누스의 기병대가 무너졌고 다른 곳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싸움은 한 시간도 채 가지 못했다. 파르살로스 전투는 싸움이 아니라 폼페이우스군의 일방적인 패배였다. 그날 6천 명의 폼페이우스군이 죽었다.폼페이우스는 자신이 끝났음을 깨닫자마자 흔들림 없이 속보로 달려 전장을 떠났다. 내가 옳았어, 내 보좌관들은 틀렸고, 대관절 라비에누스는 뭘하고 있는거지? 전장에서 카이사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자는 모든 것의 위에 있다. 우월한 전략과 전술, 난 끝났다. 막사로 돌아온 폼페이우스는 머리를 움켜쥔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폼페이우스, 일어나십시오.” 파보니우스가 이렇게 말했다. 폼페이우스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폼페이우스, 일어나세요.” 렌툴루스 스핀테르가 외쳤다. “다 끝났습니다. 우리가 졌어요.” “카이사르가 우리 진지로 들어올 겁니다. 도망쳐야 합니다.” 렌툴루스가 떨면서 말했다. 폼페이우스가 손을 떨구고 고개를 들었다. “어디로 도망간단 말인가?”(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329p)

폼페이우스와 렌툴루스와 파보니우스는 가장 가까운 성문으로 진지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라리사로 가 말을 갈아타고 테살로니카 성문을 빠져나가 페네이오스 강에 다다랐다. 거기서 일행은 바지선을 타고 암피폴리스를 거쳐 레스보스 섬의 미텔레네 항구에 내렸다. 아헤노바르부스는 전투 중에 죽어 함께 할 수 없었고, 카토는 어디로 간지 몰랐다. 항구에는 아내 코르넬리아 메텔라와 아들 젊은 섹스투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갈 곳을 정해야 했다.

다른 대안이 있나요?” “이집트” “거긴 그다지 먼 곳이 아닌데요.” “그렇소, 하지만 거긴 경유지일 뿐이오. 인더스 강가나 세리카(Serica, 고대 유럽에서 중국을 부르던 명칭)에 있는 사람들이 로마 장군을 영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내놓으려 하는지 아시오.” 코르넬리아가 활짝 웃었다.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마그누스, 참 좋은 생각이네요! 그래요, 나랑 섹스투스랑 같이 세리카로 가요!”(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349p)

9월 초에 출발 시기가 왔다. 폼페이우스의 배는 렌툴루스 집안사람 두 명과 망명 원로원 의원 60명 모르게 항구를 벗어났다. 폼페이우스는 3단 노선을 세 척만 가져갔고 나머지 아홉 척은 케르키라(그리스 북서부에 있는 섬, 현재 지명은 코르푸 섬이다.)에 있는 아들, 젊은 나이우스 폼페이우스에게 보냈다.(배들은 팜필리아의 대도시 아탈레이아에서 폼페이우스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보이며 내준 배들이었다. 그곳에 카이사르를 피해온 망명 원로원 의원 60명도 함께 있었다.) 그들은 킬리키아 시에드라에 잠깐 들렀다가 키프로스의 파포스로 건너갔다. 킬리키아를 통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키프로스의 곡물담당관은 감찰관 아피우스 클라디우스 풀케르의 아들이었는데 어떻게 하면 폼페이우스를 도울 수 있을지 열성적으로 물었다. “안타깝게도 장군께서는 여기 계속 계시면 안 됩니다. 안티오케이아와 시리아가 카이사르 지지 선언을 했고, 타르소스의 총독 관저에 있는 세스티우스는 늘 카이사르를 편드는 자이니까요. 그자도 조만간 공식 지지 선언을 할 겁니다.” “이집트로 가려는데, 바람이 좀 어떻소?” 가이우스 클라디우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라면 이집트는 안가겠습니다. 마그누스.” “어째서?” “내전중이거든요.”(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355~356p)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그의 이복누이이며 아내이기도 한 클레오파트라 7세와 전쟁중에 있었다.

폼페이우스는 쉰여덟 살 생일 이틀 전 아침에 펠루시온 앞바다에 도착하여, 그 오래되고 버려진 항구가 이집트의 전투용 갤리선과 군사 수송선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았다. 폼페이우스는 어린 왕이 펠루시온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에게 즉시 면담을 하자는 편지를 썼다. 편지는 전달됐지만 그날이 다가도록 답신이 없었다. 해방 노예 필리포스가 말단 비서에게 건넨 폼페이우스의 편지는 몇 시간이 지나서야 사무직 계급의 사다리에 오를 수 있었다. 관료제에 대해서라면 이집트는 그리스인들에게 한 수 가르쳐 줄 수 있을 정도였다. 서신을 전달받은 어린 왕의 측근인 포테이노스와 데오도토스는 경악했다. 봉인에 ‘CN POMP MAG’이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위대한 폼페이우스의 표식이었다.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원하는 게 뭐랍니까? “왕과 면담하고 알렉산드리아로 안전하게 지나가고 싶다고 하오.” 파르살로스에서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에게 패한 소식은 바람보다 빨리 지중해 전역에 퍼져 나갔고, 이집트의 포테이노스와 데오도토스에게도 폼페이우스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처음 그들은 폼페이우스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새롭게 세상의 지배자가 된 가이우스 카이사르가 그들의 뇌리에 떠오르자 어떤 도움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포테이노스와 데오도토스와 아킬라스 등은 강대한 가이우스 카이사르에게 이집트 왕의 이름으로 선물을 보내기로 했다. “죽은 자는 물지 않는 법이지요.”이것이 그들의 답이었다.(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371~378p) 

새벽이 왔다. 폼페이우스와 섹스투스, 코르넬리아는 오래된 빵을 먹고 살짝 짠내가 나는 물을 마셨다. 그들은 최소 펠루시온에서 배에 식량을 실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때 필리포스가 활짝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이집트 왕의 편지가 왔습니다. 이렇게 좋은 종이는 처음 봅니다.” 폼페이우스는 봉인을 뜯었다. “왕을 접견하게 될 거요. 한 시간 후에 배로 나를 데리러 오겠다는군.” 그들은 자주색 돛을 단 화려한 금박 바지선이 육지에서 오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났으나 그들이 기다리는 왕가의 배는 보이지 않고 조그만 상륙용 조각배 한 척이 다가왔다.(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379~381p)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를 찾고 있습니다.” 그가 소리쳤다. “그분을 찾는 자가 누구요.” 섹스투스가 물었다. “왕의 군대 총사령관 아킬라스 장군입니다.” “이리 올라오시오!” 폼페이우스가 밧줄 사다리를 가리키며 외쳤다. 코르넬리아 메텔라가 두 손으로 폼페이우스의 오른팔을 꽉 잡았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아내를 내려다보았다. “왜 그러시오?” “마그누스, 느낌이 안 좋아요! 저 사람이 원하는 게 뭐든, 그를 돌려보내세요! 제발, 닻을 올려서 여길 떠나요! 여기서 지내느니 우티카까지 오래된 빵만 먹고 지내겠어요!” “쉬잇, 괜찮소.” 폼페이우스는 그렇게 말하고 아내의 손에서 벗어났다.(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381p)

가세, 필리포스, 서둘러!” 폼페이우스는 그렇게 말한 뒤 자주색 단을 댄 토가를 입었음에도 가뿐하게 배 난간을 넘었다. 먼저 내려가 있던 아킬라스는 폼페이우스를 뱃머리의 하나뿐인 의자로 안내했다. “물이 가장 적게 튀는 자리입니다.” 배에는 오래전 폰토스와 아르메니아 시절의 핌브리아군 최고참 백인대장 셉티미우스가 앉아 있었다. 폼페이우스는 그에게 훈장을 여러 개 준 적이 있었다. “!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폼페이우스가 아내와 섹스투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배에 탄 이유였다. “셉티미우스, 불한당 같은 친구, 이리 와서 내 옆에 앉게. 그런데 펠루시온에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여기서 퇴역했습니다. 저는 아킬라스 장군이 백인대장들을 계속 데리고 있길 원해 여기서 유대인 군단의 최고참 백인대장으로 있습니다.” 한쪽 눈이 먼 백발의 노장 셉티미우스가 말했다. 잠시의 환담이 끝나자 폼페이우스는 어린 왕을 만나 그리스어로 들려줄 화려한 이야기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필리포스, 내 연설문을 좀 주겠나.” 폼페이우스는 두루마리를 펼치고 어깨를 웅크린 채 다시 한번 정독하기 시작했다. “서방은 네가 가져라, 카이사르! 난 동방으로 갈 것이다. 세리카와 자유를 향해! 세리카 사람들이 피케눔을 알까. 로마는 알고 있을까? 세리카인들이 나 같은 피케눔 출신 벼락출세자를 율리우스나 코르넬리우스 집안사람과 동일하게 봐줄까?”(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383~385p) 폼페이우스는 로마의 변방 존경받지 못하는 피케눔(이탈리아 중부 아드리아해안의 도시) 출신에다 벼락출세자였다.

순간 뭔가가 찢어지고 부스러지고 부서졌다. 이미 몸을 반쯤 배 밖으로 내민 폼페이우스는, 고개를 돌려 루키우스 셉티미우스가 자기 뒤에 바짝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따듯한 액체가 두 다리로 흘러내렸다. 잠시 동안 폼페이우스는 자기가 오줌을 싼 건가 생각했지만, 착각할 수 없는 냄새를 맡았다. 피다. 내 피? 하지만 통증이 없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그는 더러운 진흙 바닥에 벌렁 나자빠졌다. 뭐지?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그는 셉티미우스가 자신을 홱 뒤집는 걸 보았다기보다는 느꼈다. 가슴 위에 검이 드리워져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로마인 귀족이다. 저들이 죽어가는 나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된다.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신체부위를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로마인 귀족답게 죽어야 한다! 폼페이우스는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애를 썼다. 한 손으로 토가를 잡아채 허벅지까지 내리고 다른 손으로는 주름 잡힌 부분을 잡아 얼굴을 가렸다. 검 끝이 노련하고도 힘차게 그의 가슴으로 들어왔다. 그는 이제 움직이지 않았다.”(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385p)

아킬라스는 뒤에 있던 백인대장 두 명을 모두 칼로 찔렀지만, 두 사람을 동시에 죽이기는 어려웠다. 싸움이 벌어졌다. 필리포스와 노예는 얼어붙은 듯 앉아 있다가, 갑자기 자기들도 죽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배 밖으로 훌쩍 뛰어내려 도망쳤다. 셉티미우스는 받침대를 대고 폼페이우스의 머리와 몸통을 깨끗하고 깔끔하게 분리했다. 몸통은 진흙땅으로 떨어졌다. 은발이 풍성한 머리는 꿈꾸는 듯한 표정이었다. 셉티미우스는 머리를 오지단지에 떨어뜨리고 보존액이 튈까봐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오지단지에는 미라 제작자들이 내장을 제거한 몸을 담그는 액체 탄산소다가 가득 차 있었다. 아킬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예들은 단지의 밧줄 손잡이를 잡고 앞장서서 걸었다. 노잡이들은 상륙용 조각배를 밀어내고는 바쁘게 노를 저어 떠났다. 루키우스 셉티미우스는 마른 흙에 검을 찔러서 피를 닦아낸 다음 검집에 도로 넣고 일행을 따라 느긋하게 걸어갔다.”(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385~387p)

몇 시간 후 필리포스와 노예는 머리 없는 몸통이 누워 있는 적막한 해변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부목을 모아 폼페이우스의 몸통을 고생스럽게 올리고 화장했다. 폼페이우스의 몸통은 장작으로 쓴 부목과 함께 새벽까지 탔다. 두 사람은 불을 빌려온 양동이로 바닷물을 퍼서 시꺼먼 잔해만 남은 장작더미에 부어 식히곤 유골을 수습했다. “뭐가 그분이고 뭐가 나무인지 모르겠습니다. 노예가 말했다.” “나무는 바스라지지만 유골은 그렇지 않아.” 필리포스가 말했다. 그들은 수습한 유골을 양동이에 담았다. “걸어서 알렉산드리아로 간다.” 필리포스는 양동이를 잡아들고 노예의 힘없는 손을 잡았다. 그리고 걸어서 해변을 뒤로 하고 들끓는 펠루시온을 빠져나갔다.(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385~387p)

나는 생각했다. 위대한 폼페이우스(B.C 106.9.29~B.C 48.9.28)였으나, 신분은 카이사르처럼 고귀한 파트리키가 아니었다. 출생도 로마가 아닌 이탈리아 중부의 피케눔 촌놈 출신이었다. 아버지 폼페이우스 스트라보는 장군으로서 명성이 높았으나, 평판이 좋지 않아 도살자 스트라보라는 끔찍한 별명으로 불렸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때 조용히 칩거했으나, 술라를 반대하던 시칠리아와 아프리카의 반란을 진압하고, 마그누스(위대한)라는 칭호를 받았다. 지중해의 해적들을 토벌해 바닷길을 안정시켰고, 먼 히스파니아에서는 세르토리우스를 토벌했으며,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진압했다. 파르티아의 폰토스에서는 미트리다테스 왕을 무찔러 이집트를 제외한 동방을 평정시켰다. 크라수스, 카이사르와 함께 1차 삼두정치를 실시했으며, 집정관(consul)과 단독집정관까지 지냈다. 한마디로 로마 최고의 일인자(Masters of Rome)였다. 그리고 또 한때는 카이사르의 아름다운 딸 율리아의 남편이었으며 카이사르의 사위이기도 했다. 율리아가 죽기전까지는. 아헤르노부스, 비불루스, 카토, 렌툴루스 등 자나 깨나 카이사르를 반대하는 원로원 의원들 편에 서 카이사르와 대립한 것은 그의 인생 최대 실수였다. 어쩌면 피케눔 촌놈 출신이라는 뿌리깊은 열등감이 그를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지만. 기원전 48년 파르살로스에서의 패배는 더 이상 그를 일어설 수 없게 했다. 그는 여러 차례 승리했으나 카이사르와의 전투에서 단 한 번의 패배로 모든 것을 잃었다. 카이사르보다 여섯 살이나 많았지만 카이사르에게 폼페이우스는 오래전 그를 알 때부터 무릎 위에서 걀걀거리는 고양이처럼 다루기 쉬웠다. 위대한 장군이었으나, 카이사르와 같은 정치적 안목과 멀리 보는 그림, 빠르게 회전하는 머리, 밝은 눈이 그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늘 이집트의 바닷가 버려진 항구 펠루시온에서 그의 죽음을 불러온 것이다. 폼페이우스, 그의 삶은 위대했으나, 죽음은 초라했다. 그의 나이 쉰여덟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아직 내전內戰은 끝나지 않았다.

뒷날 이집트에서 폼페이우스의 머리를 선물 받은 카이사르는 유쾌하지 않았다. 로마인을 감히 로마인을, 이집트인이 내 허락도 없이 살해하다니. 카이사르는 눈을 들어 그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카이사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이집트에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들은 예측할 수 없었다. 그것이 그들을 두렵게 했다. 카이사르는 신격을 갖춘 신보다 겨우 한 뼘 아래의 장군이었고, 지중해와 세상의 지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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