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일인자들(4)
로마의 일인자들(4)
  • 김도원(金途遠)
  • 승인 2019.05.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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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카토의 코만큼 컸다고?

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장남인 젊은 나이우스 폼페이우스는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다. 안티오케이아나 로마보다도 많은 300만 주민들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후세에 남긴 가장 훌륭하고 완벽한 선물이었다. 그는 그곳 이집트의 왕궁에서 여왕을 만나 카이사르와의 전쟁에 필요한 배와 식량을 징발해 위대한 폼페이우스가 있는 마케도니아의 테살로니카(현재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방 테살로니카주의 주도)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열일곱 살에 왕이 되어-다른 기록에는 열여덟 살로 나온다.-이제 스무 살이 된 여왕은 알현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포테이노스가 얼른 앞으로 나오며 외쳤다. 그는 자주색 튜닉과 클라미스 망토를 두르고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사슬을 양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마그누스가 아니오!” 나이우스 폼페이우스가 성난 목소리로 내뱉었다. “나는 그냥 나이우스 폼페이우스요! 당신은 누구요, 왕세자요?” 더 크고 높은 옥좌에 앉은 여자가 기운차고 선율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집트의 대시종장 포테이노스고 나는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입니다.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를 대신해 환영합니다. 포테이노스, 계속 여기 있고 싶으면 물러서서 내 지시 없이는 말하지 마라.” 아하! 나이우스 폼페이우스는 생각했다. 여왕은 저자를 싫어하는군. 저자도 여왕한테 명령받는 걸 조금도 좋아하지 않아. “고맙소 여왕.” 나이우스 폼페이우스가 말했다. 그의 양옆에 릭토르가 세 명씩 서 있었다. “그럼 이쪽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여왕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나이우스 폼페이우스가 보기에 여왕은 몸무게가 물에 적신 행주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키는 일어서도 155센티미터도 안 될 것 같았고 팔은 가늘고 짧았으며 목도 비쩍 마르고 가늘었다. 고운 피부는 올리브빛이었지만 혈관이 푸르스름하게 비칠 정도로 투명했다. 밝은 갈색 머리카락은 특이하게 매만졌는데, 2.5센티미터 정도로 가닥가닥 나누어 뒤로 넘기고 목덜미 쪽에서 트레머리를 했다. 그걸 보고 폼페이우스가 떠올릴 수 있는 건 수박 껍질의 줄무늬뿐이었다. 여왕의 디아데마(diadema, 머리 장식용 띠, 혹은 여성용 보석을 박은 관으로 권위나 영광의 상징이다.)는 흰색 리본으로, 이마가 아니라 머리털이 난 위로 두르고 있었다. 옷차림은 그리스식이었으나 티로스 자주로 염색되어 있었다. 몸에 걸친 것 중 가장 값비싼 물건은 샌들밖에 없었다. 절대로 신고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 같지 않은 약하디약한 금 샌들이었다.

클레오파트라 7세가 새겨진 동전. 그리스어로 '클레오파트라 여왕, 새로운 여신'이라고 쓰여 있다. (사진출처 네이버)
클레오파트라 7세가 새겨진 동전. 그리스어로 '클레오파트라 여왕, 새로운 여신'이라고 쓰여 있다. (사진출처 네이버)

 

벽의 높은 곳에 뚫려 있는 구멍들 속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 때문에 폼페이우스는 여왕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오직 젊음이 주는 매력만이 그나마 인상을 부드럽게 만드는, 딱할 정도로 못생긴 얼굴이었다. 그의 마음에 드는 큰 눈은 녹금색 혹은 녹갈색이었다. 키스하기 좋은 입이었지만 단호하게 다물어져 있었다. 코는 카토-로마 원로원 의원, 카이사르의 열렬한 반대자. 코가 크기로 유명하다.-의 코만큼이나 큰 데다 유대인의 코처럼 강한 매부리코였다. 마케도니아인의 특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가씨였다. 전형적인 동방인의 외모였다.(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249~251p)

여왕의 이복동생이며 남편인 소년은 마케도니아인답게 매력적인 금발에 푸른색 눈 등 그리스인보다는 트라키아인 같은 외모였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아버지의 한쪽 부모가 다른 누이였고 외조모는 아리비아 나바테아의 공주였다. 그러나 셈족의 특징이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게는 보이지 않는 반면 이복누이 클레오파트라에게선 더 잘 드러났다. 여왕의 어머니는 폰토스의 경이로운 미트리다테스 왕의 딸이었고, 미트리다테스 가문 사람답게 짙은 황색 머리카락과 눈동자에 체격도 키도 컸다. 따라서 이복누이보다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몸에 셈족의 피가 더 많이 흘렀지만 클레오파트라가 더 셈족 같아 보였다.(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246p)

나이우스 폼페이우스는 여왕에게 요구했다. “최소 열 척의 전함과 수송선 60척으로 구성된 선단을 원하오. 충분한 수의 선원과 노잡이도 필요하고, 수송선은 밀과 다른 식량으로 가득 찬 상태여야 하오.” 여왕은 전함과 수송선은 준비하겠다고 했으나, 이집트의 백성들에게 먹일 식량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식량은 줄 수 없다고 했다. 폼페이우스는 여왕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며, 내 알 바가 아니라고 했다.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시리아에 있는 로마의 군대가 남쪽으로 행군해 이집트를 풍뎅이처럼 밟아 으깰 것이라고 협박했다.(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251p, 253p) 여왕은 종내는 폼페이우스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었다. 그러나 완벽하게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 망할 암늑대 년! 젊은 폼페이우스는 그중 고작 열 척만 밀을 싣고 있음을 발견한 후 으르렁거렸다. 그가 직접 확인했을 때 밀로 가득 차 있었던 나머지 50척의 단지들에는 대추야자가 들어있었다.”(Masters of Rome . ‘카이사르’ 3257p)

콜린 매컬로는 어디에서 여왕에 대한 이처럼 세밀한 묘사의 자료들을 구했을까. 실제 젊은 폼페이우스가 클레오파트라를 이렇게 이야기했을까. 아니면 플루타르코스가 그녀를 위해 더 특별한 자료-플루타르코스는 클레오파트라가 더 특별한 미모를 지니지 않았고,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도 아니었다고 기록했다.-를 남겨두었던가. 13년간이나 로마의 자료를 연구하고, 18년 동안이나 관련된 책을 썼으니 매컬로가 본 다른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그동안 우리가 알던 아름다운 여왕은 무엇인가? 환상이 깨지자 그들의 사랑마저 시들해졌다. 안토니우스여! 안토니우스여!

나는 필요한 자료들을 편집하고, 내 생각을 덧붙여 나만의 방식과 습관대로 여왕을 정리했다. 클레오파트라(클레오파트라 7, Cleopatra Philopator, B.C 69~B.C 30), 관습에 따라 어린-여덟 살이나 어렸다.-이복동생(프톨레마이오스 13)과 결혼한 그녀는 열여덟 살에 동생과 함께 왕이 되었다. 여왕은 총명하고 지혜롭고 아름다웠다. 여왕의 꿈은 그녀가 다스리는 이집트와 알렉산드리아를 로마로부터 자유로운 풍요롭고 강한 힘을 가진 땅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300여 년 전 마케도니아에서 온 선조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스스로 이집트의 왕이 되어 강성했던 것처럼. 그러나 지금 로마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었고, 여왕은 스스로 강력한 힘을 갖추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여왕은 그녀의 지혜와 아름다움으로 그 꿈을 이루고자 했다. 여왕은 카이사르에게는 젊고 아름다운 스스로를 선물해 이집트의 안전과 독립을 보장받았고, 그가 죽자 로마의 일인자가 된 안토니우스를 유혹해 그를 대신하고자 했다. 그러나 종국엔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 B.C 83~B.C 30)와 사랑에 빠져 함께 죽음에 이르렀다. 카이사르에게 여왕은 정부情婦에 불과했지만 안토니우스에게 그녀는 로마에 절세의 미인 옥타비아라는 부인을 두고도 결혼할 정도로 진실한 사랑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여왕에게 여러 나라의 언어와 지혜와 재능과 과단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사랑까지 주었지만 행운까지는 주지 않았다. 여왕의 꿈을 실현해 줄 카이사르는 브루투스의 단검에 찔렸고, 서로가 사랑했던 안토니우스는 악티움 바다에서 옥타비우스에게 패해-B.C 3192일 옥타비아누스가 그리스 악티움 앞바다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격파했다.-스스로 판갑을 벗고 가슴을 칼로 찔러 여왕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절망한 여왕도 스스로 뱀에게 가슴을 내주어 목숨을 끊었다. 옥타비우스의 모욕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방법이기도 했으나, 이것으로 제국의 꿈도 이집트의 독립도 허망한 꿈이 되었다. 여왕의 죽음과 함께 마케도니아에 뿌리를 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도 수명을 다하고 로마의 속주로 전락했다. 기원전 30830일 여왕의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갑자기 서른아홉에 스스로 죽은 다자이 오사무(だざいおさむ 太宰治)가 생각났다.

나는 생각했다. 이집트의 몰락과 함께 로마는 제국帝國이 되었고, 안토니우스의 숙적이었던 옥타비우스는 로마의 초대 황제(Augustus 황제. 재위 B.C 30~A.D 14)가 되었다. 만약 여왕이 안토니우스가 아니라 옥타비우스를 선택했더라면 유럽의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처음 여왕이 안토니우스를 유혹했던 것은 그가 옥타비우스보다 더 오랫동안 카이사르와 함께했고, 더 경륜이 있고 더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명하고 지혜로웠던 여왕이 안토니우스보다 더 오래 함께하지도 않았고, 경험도 더 적고 스무 살이나 더 젊은 옥타비우스를, 로마에서 가장 뛰어난 일인자였던 카이사르가 왜 후계자로 지목했는지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마 여왕은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왕이 안토니우스를 선택한 것은 자신과 아들 카이사리온(Caesarion, 카이사르와 여왕 사이에 태어난 아들)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는 카이사르의 유언장에 배신감을 느껴서였을지도 모른다. 여왕은 죽었고, 무수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 오직 여왕만이 진실을 알 뿐이다.

 

안티오케이아(Antiocheia) : 현재는 터키 남부 하테주의 주도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장이었던 셀레우코스 1세가 기원전 312년에 세운 시리아 셀레우코스왕조(기원전 64년 폼페이우스가 멸망시키고 로마의 속주로 삼았다.)의 수도였다. 당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지중해 동부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셈족(Semites) : 본향은 아라비아반도이다. 북쪽의 민족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서남쪽의 민족들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로 이주했다. 북쪽으로 이동한 아카드인들은 기원전 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문명을 일으켰다.

미트리다테스(Mithridates, B.C 132~B.C 63) : 미트리다테스 6, 미트리다테스 대왕으로 알려져 있는 아나톨리아(소아시아) 북부 폰투스 왕국의 왕이다. 로마 공화정 말기 세 명의 유명한 로마 장군 술라, 루쿨루스, 폼페이우스와 차례로 싸웠다.

콜린 매컬로(Colleen Mccullough, 1937~2015 ) :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작가. 그의 두 번째 작품 가시나무 새는 전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어 3,000만 부나 팔렸다. ·미권에서는 역사소설가로 명성이 더 높다. 1990년부터 ‘Masters of Rome’ 7부작을 연달아 발표했다.

옥타비아(Octavia, B.C 70?~BC 11) : 옥타비우스의 누이로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손꼽힌다. B.C 40년 남편 마르켈루스가 사망하자 안토니우스와 재혼했으나,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 7세와 결혼하자 이혼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가 죽은 뒤에도 그 유자녀를 맡아 양육했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내란시대를 정숙하게 살아간 행동으로 존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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