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와 채터 크루터
박찬호와 채터 크루터
  • 김도원(金途遠)
  • 승인 2019.03.0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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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미국 마블의 인기영화 시리즈 어벤져스의 닥터 스트레인저가 되어 시간을 20년 전으로 되돌린다. 때는 서기 2000, 미국 MLB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찬호 선수가 18승으로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대 승수를 기록하며 정규시즌을 마쳤다. 그에게 쏟아지는 서포트라이트는 대단했다. 목표인 20승은 채우지는 못했지만 사이영상 후보감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렸다. 여기다 박찬호의 호투 덕분에 미국에서 한국인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말도 들렸다. 메이저리그 풀타임 5년 만에 이룬 결과였다.

올해 박찬호가 이처럼 성공한 데는 물론 자신의 노력이 가장 큰 요인이었겠지만 박찬호 도우미인 게리 셰필드의 홈런포와 포수 채터 크루터 투구 리드가 큰 몫을 했다는 것이 현지의 평가다. 실제 박찬호는 채터 크루터가 리드를 하면 마음이 편해 마음 놓고 던질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때문에 박찬호가 선발로 나오는 경기는 거의 채터 크루터가 포수를 맡아 왔으며, 다른 선수들은 그 능력 여하에 상관없이 불펜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전 채터 크루터는 LA다저스와 230만 달러에 재계약을 했다. 채터 크루터의 지난해 연봉은 50만 달러, 무려 4배 이상 오른 금액으로 올해 재계약에 성공한 것이다. 사실 박찬호와 배터리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채터 크루터는 큰 활약이 없는 그저 평범한 노장에 불과했다. 경기 주전을 장담할 수 없었으며, 더구나 재계약까지는 생각도 못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이번 계약으로 그는 내년도 박찬호가 LA다저스에 있는 한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됐다. 230만 달러라는 연봉이 그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원래 LA다저스의 주전 포수는 토드 헌들리였다. 타율도 3할대에 육박하며, 손색없는 포수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나 토드 헌들리는 박찬호의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이유는 채터 크루터 때문이었다. 아니 박찬호의 특정 선수에 대한 일교차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에 대해 박찬호 스스로도 토드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뿐만이 아니라 박찬호의 경기에는 잠재성이 있는 후보군이나 미래를 대비해 실전경험을 쌓아야 하는 다른 선수들의 출전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찬호, 채터 크루터, 승리라는 세 단어가 감독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말 중에 찰떡궁합이라는 말이 있다. 찹쌀로 만든 떡처럼 착착 붙을 정도로 관계가 좋고, 서로를 잘 알아 팀워크가 그만큼 잘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찰떡궁합이 서로의 관계를 가리게 한다는 데 있다. 관계가 편한 사람, 마음에 드는 사람만을 편애하게 한다는 것이다. 박찬호의 경우 앞으로 점점 더 채터 크루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갈 것이다. 나아가 비약적이긴 하지만 크루터가 없으면 볼을 던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박찬호의 경기에 새로운 선수들은 물론, 다른 유능한 선수들도 출전의 기회를 잃어 갈 것이다. 박찬호가 없다면, 반대로 채터 크루터가 없다면 이 둘은 존재 의미를 잃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현지 언론에서도 박찬호가 이것을 극복해야 특급 투수 대열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유연하게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변화하는 조직, 사람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 토드 헌들리가 되든, 채터 크루터가 되든, 홍현우가 되든 투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아니라 일, 직무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야구든 조직이든 마땅히 그래야 경쟁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글은 2000년에 쓴 글이다. 하지만 지금도 사실 크게 변한 게 없다. 박찬호는 20025년간(2002~2006) 옵션 포함 7,100만 달러를 받기로 하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갔다. 4년 동안 68경기에 출전해 2223패 평균자책 5.79를 기록했고, 380이닝을 던지며 55개의 홈런을 허용했다. 2005년 먹튀 놀란 속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 됐다. 텍사스에는 채터 크루터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 1990년대 대한민국 모든 이에게 희망이라는 선물을 주었던 박찬호, 나는 아직도 그의 팬이고, 그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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