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일인자들(11)
로마의 일인자들(11)
  • 김도원(金途遠)
  • 승인 2019.07.0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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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누스, 옥타비아를 주고 평화를 얻다.
콜린 매컬로가 직접 펜으로 그린 옥타비아, 기원전 40년 남편 마르켈루스가 죽자 안토니우스와 재혼해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사이의 불화를 조정하려 애썼다. 하지만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맺어지자 결국 이혼했다.
콜린 매컬로가 직접 펜으로 그린 옥타비아, 기원전 40년 남편 마르켈루스가 죽자 안토니우스와 재혼해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사이의 불화를 조정하려 애썼다. 하지만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맺어지자 결국 이혼했다.

 

원전 40년 이제 막 스물세 살이 된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와의 내전內戰을 막고 로마의 평화를 지켜낼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사랑해마지않는 그의 아리땁고 정숙한 누이 옥타비아였다. 옥타비아는 동생 작은 가이우스와 네 살 터울로 그해 스물일곱 살이었다. 외모는 더할 나위 없이 율리우스 집안사람다웠다. 금발, 파란 눈동자, 도드라진 광대뼈, 사랑스러운 입술,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환하고 침착한 표정.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대부분의 율리우스 집안 여자들이 타고난다고 알려진 재능, 다시 말해 남편을 행복하게 해주는 재능을 누구보다도 많이 타고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인 작은 마르켈루스는 인정사정없이 자신을 갉아먹는 종양으로 고생하다 6개월 전 세상을 떠났다.

결혼옥타비아누스는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옥타비아!” 마이케나스(가이우스 마이케나스 Gaius Maecenas B.C 70~A.D 8, 아우구스투스의 충실한 조언자 역할을 했던 정치가이자 외교관이다. 문학과 예술에 대한 폭넓은 지원으로 오늘날 메세나운동의 시초를 열었다.)가 나직이 말했다. “그래, 우리 누나 말일세. 누나는 이제 과부라서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네.” “하지만 그녀는 아직 10개월간의 애도도 마치지 않았어.” “벌써 6개월이 지났고, 마르켈루스는 아주 오랫동안 고통받다 떠났으니 누나가 지금 임신중일 리 없다는 건 모든 로마인들이 잘 알아. 대신관단은 물론, 추첨을 통해 종교 민회에서 투표권을 얻게 될 17개 트리부스의 특별허가를 받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걸세.” 옥타비아누스는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나와 안토니우스 사이의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조치라면 뭐든 통과시키려고 정신없이 서두르겠지. 이 결혼은 로마 역사상 대중으로부터 가장 큰 환호를 받게 될 걸세.” “그는 동의하지 않을 거야.” “안토니우스? 그는 젖소하고도 성교性交할 텐데.” “지금 자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나, 카이사르? 자네가 누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도 알아. 그런 누나를 안토니우스에게 시집보낼 거라고? 그는 술주정뱅이에다 아내를 패는 인간이야!(안토니우스는 아내 풀비아가 자신의 허락도 없이, 감히 여자가 옥타비아누스와 전쟁을 벌이자 그녀를 인정사정없이 팬 적이 있었다. 풀비아는 안토니우스의 무자비한 구타로 코뼈가 부러지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다. 이 일로 크게 상심한 풀비아는 스스로 손목을 그어 그의 숨을 지하세계로 보냈다. 모든 로마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심지어는 얼마 전의 일이었다.) 제발 부탁이니 다시 생각해보게! 옥타비아는 로마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다정하고 훌륭한 여자야. 최하층민들조차 그녀를 아낀단 말일세. 그들이 디부스 율리우스의 딸을 아꼈던 것처럼. 

난 누나에게 이 결혼을 강요하지 않을 거야. 자네가 하려는 말이 그거라면 말일세.” 옥타비아누스는 흔들림 없는 태도로 말했다. “자네도 알겠지만 난 멍청하지 않네. 난 파르살로스전투(기원전 4889일 그리스 테살리아 지방의 파르살로스 평원에서 벌어진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간의 전투. 카이사르는 이 전투에서 완벽하게 승리함으로써 내전의 주도권을 잡았고 폼페이우스는 결국 괴멸했다. 마그누스는 내전에서 패하자 이집트를 거쳐 서방은 네가 가져라! 카이사르. 나는 동방으로 갈 것이다.’를 외치며 세리카 Serica-고대 유럽에서 중국을 부르던 명칭-로 가려다 펠루시온 앞바다에서 예전 그의 백인대장이었던 셉티미우스의 칼날 아래 고혼이 됐다. 그의 나이 쉰여덟 살 때였다. 拙稿 위대한 폼페이우스의 최후참조) 이후로 가족 만찬에 충분히 많이 참석했기 때문에 옥타비아 누나가 안토니우스에게 반쯤은 반해 있다는 것을 눈치챘어. 누나는 자기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일 걸세. 어쩌면 아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지.” “믿을 수 없군.” “사실이야. 여자들이 남자에게 뭘 원하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내 말을 믿게. 옥타비아 누나는 안토니우스에게 관심이 많아.” 옥타비아누스는 이 아이디어를 자신과 스크리보니아와의 결혼에서 얻었다,고 했다.(안토니우스가 브룬디시움 앞바다의 해적에 불과하다고 형편없이 폄하한-해적이란 말을 듣고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는 무척 화가 났지만-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작은 아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의 장인인 루키우스 리보의 서른세 살이나 먹은 여동생 스크리보니아와의 결혼함으로써-옥타비아누스에게는 세 번째 결혼이었다. 그는 앞서 두 번 결혼했지만 아내들을, 첫날밤도 치르지 않고 손끝하나 건드리지도 않고 그 어머니들에게 돌려보냈다.-옥타비아누스는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 동맹을 맺고 그가 아프리카 곡물수송선을 막아서지 않는다는 보장을 받았다. 물론, 섹스투스로부터 곡물을 살 수도 있게 되었다. 턱없이 비싼 가격이긴 했지만) 이집트 여왕도 있잖나. 그는 부정不貞한 남편이 될 걸세.” “해외에서 근무하는 남자 중에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나? 옥타비아 누나는 너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랐으니 그의 부정을 비난하지 않을 거야.” 옥타비아누스는 그 시대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랬듯이 남자의 부정에 대해 관대했다. 그의 나이 이제 겨우 스물세 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옥타비아누스의 확신에 두 손을 든 마이케나스는 외교관의 골치 아픈 운명을 고민하러 떠났다

옥타비아누스는 이 협상 건에 관해서만큼은 뒤로 물러나 있을 마음이 없었다. 그는 기꺼이 직접 협상에 나설 생각이었다. 지금쯤이면 안토니우스도 필리피 전투(기원전 4210월 마케도니아 필리피 염습지에서 벌어진 삼두연합의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의 군대와 카이사르 암살주동자인 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이끄는 군대와의 전투. 이 전투에서 패배한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롱기누스는 자살했다. 拙稿 카이사르 암살자들의 최후참조) 직후 그의 막사에서 벌어진 사건 같은 건 잊었을지도 몰랐다. 당시 옥타비아누스는 브루투스의 잘린 머리를 요구했고 마침내 그것은 손에 넣었다. 안토니우스의 증오는 너무 거대해져서 개별적인 사건들을 모두 가려버릴 정도였다. 물론, 옥타비아누스는 옥타비아가 안토니우스와 결혼한다고 해서 그 증오가 변할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옥타비아누스는 그런 기적을 바라기엔 너무 현실적이었다. 옥타비아가 안토니우스의 아내가 되면 그녀는 정확히 안토니우스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터였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남동생에 관한 안토니우스의 생각을 바꾸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옥타비아누스가 이 결혼을 통해 기대하는 건 그게 아니라, 평범한 로마인들과 군단병들에게 전쟁의 위협이 온전히 사라졌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효과였다. 그러다 어느 날 안토니우스가 새로운 여자에 대해 새로운 욕구를 품고 자기 아내를 내치면, 수백만 로마 시민들의 가슴 속에서 안토니우스의 명성은 바닥을 치게 되리라. 옥타비아누스는 절대 내전을 벌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음으로 안토니우스의 권위가 아니라 존엄을 파괴해야 했다.-, 영리하구나 옥타비아누스여! 이제 겨우 스물세 살에 불과한 그대의 머릿속에 세상 모든 일을 겪은 전직 집정관을 찜 쪄 먹을 노회한 늙은이 하나가 들어있구나!- 디부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내전을 벌인 것은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의 업적이 로마 공화정의 공식 기록과 역사에서 지워지고 영구 추방을 당하는 건 그로서는 내전보다 더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옥타비아누스는 그런 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불명예나 추방령보다 내전이 더 끔찍했다. 또한 그에게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보장해주는 군사적 천재성도 없었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옥타비아누스의 방식은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존엄을 서서히 갉아먹어, 그가 더는 위협 요소가 아니게 될 정도로 그 존엄을 밑바닥까지 추락시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옥타비아누스의 별은 점점 더 하늘 높이 올라가고, 안토니우스가 아닌 옥타비아누스가 끝내 로마의 일인자가 될 터였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므로 오랜 세월이 걸릴 터였다. 하지만 옥타비아누스는 그 오랜 시간을 감내할 수 있었다. 그는 안토니우스보다 스물한 살이나 어렸다.

나는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해 해방노예 배달원에게 전달한 다음 생각했다. 안토니우스를 영원히 보내버릴 무언가를 포르투나 여신이 내 무릎에 떨어뜨려주기만 한다면 나는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 옥타비아누나는 그 무언가가 아니다. 안토니우스가 누나의 선한 천성에 질려 누나를 내치는 상황도 그 무언가가 아니다. 포르투나 여신이 내게 미소 짓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는 아주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매번 나를 깊은 수렁에서 건져낸 것은 행운이었다. 여동생에게 걸출한 남편을 구해주려는 리보의 욕심(이 욕심 덕으로 옥타비아누스는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 결혼동맹을 맺을 수 있었다.), 나르보(로마의 갈리아 속주에 있는 해안 도시)에서 갑작스럽게 죽은 칼레누스와 그 소식을 안토니우스가 아닌 내게 전한 그의 멍청한 아들(퀸투스 푸피우스 칼레누스가 나르보에서 갑자기 죽자 수석보좌관이던 그의 아들은 옥타비아누스에게 편지를 보내 노련병으로 구성된 11개 군단을 지휘할 총독을 빨리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편지가 갈리아 속주의 주인인 안토니우스에게 먼저 전달되지 않은 건 포르투나 여신의 보살핌이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아무런 수고로움 없이 11개 군단을 얻었다.), 나를 위해 군대를 통솔해 주는 아그리파, 천식이 숨통을 조여오지만 매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상황, 나의 파산을 막아주고 있는 나의 아버지 디부스 율리우스의 군자금(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가 파르티아 원정을 위해 가이우스 오피우스의 금고에 보관한 군자금을 안토니우스 몰래 아그리파를 시켜 빼돌렸다.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가 이 군자금을 빼돌렸다고 확신했으나, 옥타비아누스는 늘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안토니우스의 입국을 거부한 브룬디시움(이탈리아 남동쪽 풀리아주의 장화 뒷굽 부근에 있다. 지명은 브린디시. 옛날 로마가 바다를 통해 동방으로 나가는 군항이자 상업항이었다. 기원전 246년 건설한 아피아가도의 종점이기도 하다.)의 주민들, 어느 것 하나 포르투나 여신의 보살핌이 아니고서는 얻기 힘든 것들이었다. 나는 매일 포르투나 여신을 비롯한 10명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친다. 안토니우스가 세월의 무게에 필연적으로 무너지는 것보다 더 빨리 그를 무너뜨릴 무기를 내게 달라고. 디부스 율리우스는 나를 그의 아들로 만들었고, 나는 그가 시작한 일을 내가 마무리해주리라는 그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 그것이 디부스 율리우스가 만들고자 했던 것과 똑같은 세상은 아닐 테지만, 그는 충분히 만족하고 기뻐하리라. 포르투나 여신이여! 카이사르의 전설적인 행운을 내게도 내리소서! 내게 무기를 내리시고, 그것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내가 알아보게 하소서!

만남은 성사되었다. 기원전 401012일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는 브룬디시움 광장에서 만났다. 안토니우스는 손을 내밀지 않았지만 옥타비아누스가 손을 내밀고 있었으므로 안토니우스는 그 손을 받아줘야 했다.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의 연약한 손을 으스러지도록 세게 잡았다. 옥타비아누스는 표정변화 없이 그 악력을 견뎠다. 막사 안에서 안토니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리공예품에 대해서, 무척이나 즐겁고 방탕하게 지냈던 알렉산드리아와 여왕에 대해서, 옥타비아누스가 가로챈 칼레누스의 11개 군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가 동방 속주가 내야 할 공세公稅를 내지 않은 것에 대해서,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로마에서 안토니우스가 인기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 곡물 구입에 대해서, 특히 옥타비아누스는 동방 속주의 공세에 대해서는 집요할 정도로 안토니우스를 몰아부쳤다. 안토니우스는 후회가 밀려왔다. 왜 애초에 이 작고 가증스러운 각다귀와의 직접 대면을 승낙한 걸까? 저놈은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로마에서 내 평판이 바닥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내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로마 원로원과 인민이 내 직위를 박탈할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거다. 그렇다. 나는 로마로 진군해 옥타비아누스를 처형하고 스스로 독재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큰 소란을 피워가며 독재관직을 폐지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또한 브룬디시움 사태로 내 병사들이 옥타비아누스의 병사들과 싸우지 않으리란 사실이 밝혀졌다.(이 시기 옥타비아누스의 군대는 폴리오의 병사든 벤티디우스의 병사든 간에 안토니우스의 군대와는 싸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마찬가지로 폴리오와 벤티디우스의 병사들도 자신들은 로마에 속해있지 어떤 한 사람에 속해 있지 않다.”며 옥타비아누스에게 속한 전우들과의 전투를 거부했다. 그들은 이미 멀게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와의 경험에서 가깝게는 삼두연합과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와의 전투에서 내전의 참혹함을 알고 있었다.) 저 좆만한 놈이 내 앞에서 나를 거역하고 자신의 적대감을 마음껏 들어낼 수 있는 건 오직 그 때문이다.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게 도움이 될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더 세게 밀어붙이는 옥타비아누스의 계획은 성공했다. 이제는 준비해 온 마지막 카드를 던져야 할 때였다. “당신이 절 도우리라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차분하게 말했다. “저는 가장 높은 자리부터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모든 로마인의 눈에 더 확실히 드러나는 조치를 생각하고 왔습니다.” “?” “제 누나 옥타비아와의 결혼입니다.” 입이 떡 벌어진 안토니우스는 그를 괴롭히는 상대방을 빤히 쳐다봤다. 옥타비아누스는 계속 이야기했다. “옥타비아는 한 점의 흠결도 없습니다. 그녀와 결혼하면 로마인들은 당신이 로마인들을 해할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왜 그렇게 된다는 거지?” “옥타비아처럼 대중의 귀감이 되는 여자에게 못되게 군다면, 당신은 모든 로마인들의 눈에 괴물로 비춰질 겁니다. 그들 중 가장 멍청한 사람이라도 옥타비아에게 함부로 대하는 인물은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알겠네. 좋아, 알겠어.” 안토니우스는 천천히 말했다. “그렇다면 거래가 성사된 건가요?” “성사되었네.” 안토니우스는 이번에는 옥타비아누스와 부드럽게 악수를 나눴다.

협상은 타결되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환한 얼굴로 환호하며 옥타비아누스의 발에 꽃을 던졌다. 하지만 안토니우스의 발에 침을 뱉고 싶은 충동은 꾹 참고 눌렀다. 안토니우스의 만행은 절대 용서받거나 잊힐 수 없었지만, 이날은 옥타비아누스와 로마의 승리를 의미했다. 또 다른 내전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영리한 옥타비아누스는 그의 사랑하는 누나 옥타비아를 안토니우스에게 주고 평화를 얻었다. 하지만 이 평화가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옥타비아누스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안토니우스에게 대적할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것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누이 옥타비아를 안토니우스에게 주고 평화를 달라고 요청한 이유다. 내겐 평화가 필요하다. 그랬다. 이 평화의 시간 동안 옥타비아누스의 힘은 무럭무럭 자랄 것이었고, 안토니우스의 존엄은 하루하루 깎여나갈 터였다. 이제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존엄한 자, 아우구스투스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사족蛇足 : 옥타비아의 어머니 아티아는 눈물바람으로 분괴하며 옥타비아와 안토니우스의 결혼 소식을 옥타비아에게 전했다. 옥타비아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엄마가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엄마가 잊고 계신 게 있는데, 전 작은 가이우스의 친누나예요. 다시말해 로마가 배출한 가장 똑똑한 여자 중 하나라는 거죠. 저는 뛰어난 지성에서 비롯된 자신감을 갖고 있지만 마르켈루스와 엄마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숨겨왔어요. 하지만 작은 가이우스는 제 속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아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 대한 제 감정을 그 애가 몰랐다고 생각하세요? 작은 가이우스는 아무것도 놓치는 법이 없어요! 그리고 그 애가 자기 경력을 쌓기 위해 이용하지 못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 앤 절 사랑해요, 엄마. 작은 가이우스가 제가 원하지 않는 결혼을 억지로 시킨다고요? 아뇨, 엄마, 절대 그런 일은 없어요.” 이것이 안토니우스에 대한 옥타비아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옥타비아와 안토니우스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안토니우스는 결국 클레오파트라 더 사랑했고, 그의 품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기원전 30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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